‘FA시장의 큰 손’ KCC가 손에 넣었던 슈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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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시장의 큰 손’ KCC가 손에 넣었던 슈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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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계에는 “KCC가 마음만 먹으면 FA시장이 요동친다”라는 말이 있다. 예외 없이 원했던 선수와 인연이 닿았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스타에게 목돈을 안기며 계약을 성사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2002년 양희승을 제외하면 내부에서 놓친 스타급 FA도 없었다. 2023년에 성사된 최준용과의 계약은 ‘FA시장의 큰 손’이 찍은 방점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앞서 KCC가 FA시장에서 일으킨 소용돌이는 어떤 결말로 이어졌을까.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됐으며, 보수는 공식 발표 기준입니다.

2007년_아낌없이 주는 나무 : 더 비기닝

서장훈 4년 연봉 4억 원

임재현 5년 2억 8100만 원

· 영입 전 ▶ 2006-2007시즌 15승 39패 10위

· 영입 후 ▶ 2007-2008시즌 33승 21패 2위, PO 4강

FA 제도가 도입된 2001년 이후 KCC가 처음으로 외부에서 수혈한 FA는 2006년 신동한이었다. 안양 KT&G(현 KGC)에서 받았던 이전 시즌 연봉(7000만 원)보다 100% 인상된 1억 4000만 원에 계약했지만, 롤플레이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팀 전력을 크게 상승시킨 계약은 아니었다.

KCC가 ‘FA시장의 큰 손’이라 불리게 된 건 2007년이었다. 2006-2007시즌에 팀 역사상 처음으로 10위에 머문 KCC는 의욕적으로 FA시장에 나섰다. 일단 내부 FA 자원인 이상민, 추승균과 재계약한 KCC는 이후 외부로 눈길을 돌렸다. 울산 모비스(현 현대모비스), 인천 전자랜드(현 한국가스공사)와 함께 ‘최대어’ 서장훈에 대한 영입의향서를 제출했다. 서장훈은 망설임 없이 KCC를 택했다. 또한 전자랜드와 경합이 붙은 임재현도 손에 넣었다.

전력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KCC가 범한 실책도 있었다. 원소속팀 협상기간에 재계약한 이상민을 서장훈의 보상선수로 서울 삼성에 넘겨준 것.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적이었던 만큼, KCC는 한동안 팬들의 수뇌부 퇴진 운동에 홍역을 앓았다.

전력이 좋아진 만큼, FA 영입 효과는 톡톡히 누렸다. 서장훈을 축으로 전력을 개편한 KCC는 2라운드부터 줄곧 상위권에서 순위 싸움을 펼쳤고, 이전 시즌보다 18승 더 많은 33승을 따내며 정규리그 준우승을 거뒀다. 서장훈은 전 경기에 출전, 방성윤(당시 SK)에 이어 국내선수 득점 2위에 오르는 등 변함없는 득점력을 보여줬다. 다만, 임재현은 슬럼프에 빠져 한동안 달갑지 않은 오명에 시달려야 했다.

운명의 장난일까. KCC는 4강에서 자신들이 지키지 못했던 이상민을 앞세운 삼성과 맞붙었다. KCC는 객관적 전력상 우위라는 평가 속에 시리즈를 맞았으나 이상민, 이정석, 강혁을 앞세운 삼성의 기동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KCC는 삼성과의 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했고, 이는 서장훈이 KCC에서 치른 처음이자 마지막 플레이오프가 됐다. 2007-2008시즌이 한창이던 2008년 1월, KCC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서장훈을 보유한 KCC라 해도 한국인 최초 NBA리거 하승진을 1순위로 지명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허재 감독은 서장훈과 하승진의 공존에 자신감을 표했지만, 막상 2008-2009시즌이 개막하자 출전시간 배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KCC에서 역대 최초 통산 1만 득점을 달성했지만, 여전히 30분 이상의 출전시간을 원했던 서장훈에게 20분 안팎의 출전시간은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였다.

서장훈은 2008-2009시즌 19경기 평균 24분 1초를 소화하는 데에 그쳤고, 허재 감독과의 면담을 거쳐 트레이드됐다. 서장훈과 김태환이 전자랜드로 향했고 신인 강병현을 비롯해 정선규, 조우현이 KCC 유니폼을 입었다. 트레이드 직후 8연패에 빠지는 등 잠시 과도기를 거쳤던 KCC는 2008-2009시즌 중반 이후 안정적으로 승수를 쌓았고, 정규리그를 3위로 마쳤다. 이어 플레이오프에서는 전자랜드(6강), 동부(현 DB·4강), 삼성(챔피언결정전)을 차례대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_합리적 투자 후 예고 없이 찾아온 위기

김태술 5년 보수 6억 2000만 원

· 영입 전 ▶ 2013-2014시즌 20승 34패 7위

· 영입 후 ▶ 2014-2015시즌 12승 42패 9위

KCC는 서장훈, 임재현 이후 한동안 외부 FA를 영입하지 않았다. 하승진, 강병현을 주축으로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마친 가운데 2009귀화혼혈 드래프트 전체 1순위의 행운까지 얻으며 전태풍을 영입, 전성기를 누렸다.

FA에 대한 관심을 끊었던 KCC가 모처럼 거액을 투자한 건 2014년이었다. 정통 포인트가드로 주가를 높인 김태술을 사인&트레이드 방식으로 영입했다. 당시 FA 최대어였던 만큼 출혈도 있었다. 이상민 이후 KCC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강병현, 2년 차 시즌에 가능성을 보여줬던 장민국을 KGC에 넘겨줬다.

KCC로선 승부수를 띄울만한 시기였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한 하승진이 복귀를 앞두고 있었고, 김민구는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마친 직후였다. “김태술은 ‘영입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선수였지만 샐러리캡이 안 맞아 베팅이 불가능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사인&트레이드와 관련된 소문이 있었고, 이 방법이라면 영입을 시도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조진호 KCC 사무국장이 당시 남긴 말이다.

약점인 포인트가드를 김태술로 메우며 명가 재건을 꿈꿨지만, KCC의 계획은 오프시즌부터 틀어졌다. 김태술 영입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김민구가 음주운전에 의해 일어난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당한 것. 김민구의 성장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강병현을 트레이드했던 KCC로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김태술과 KCC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치를 밑돌았다. KCC는 스크린을 활용하는 데에 능했던 김태술의 장점이 최적화될 수 없는 선수 구성이었고, 허리부상에 시달린 것도 악재였다. 이전 시즌에 데뷔 첫 어시스트 1위에 올랐던 김태술은 데뷔 후 가장 적은 3.7어시스트에 그쳤다. KCC 역시 3라운드 초반 9연패를 당한 후 줄곧 9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시즌 막판에는 허재 감독마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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