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당시 마이라 촌 이떄가 그립다 당시 후기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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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당시 마이라 촌 이떄가 그립다 당시 후기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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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코앞에 두고 여느 친구들처럼 이젠 뭘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때에 


동네 선배로부터 미아리에서 장사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살던 곳이 미아리 에서 두세 정거장 거리인 정릉 이란 곳이였기에 


동네 노는 선배들중 일부는 미아리 사창가에서 돈벌이를 찿곤 했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 미아리 라는곳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꽤나 두렵고 망설여 지는 일이였다 


아니, 더 솔직히 쫌 찝찝하기도 하고 매우 꺼려 졌다 


하지만 아무 자본도 없이 일할수 있고 돈벌이도 괞찮았으며 누구 간섭 받지 않고 

  

혼자 일 할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제대를 몇일 앞두고 

  

그 장사를 하기로 결정 했다 


드디어 그렇게도 기다리던 병장 전역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미아리 에서의 마차 장사를 시작 했다 


장사 내용은 이렇다 


미아리 사창가는 매우 좁은 골목으로 미로 처럼 연결된 꽤나 넓은 지역이다 


그 골목 곳곳에 [마차] 라고 해서 커피나 꿀차를 파는 리어카들이 있다 


사창가 영업집 과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곳에 일하는 여자분들이 한껏 치장을 하고 유리로 된 문 밖을 바라보고 앉아 있고 


나는 그녀들을 서로 바라보고 앉아 있는 형태이다 


그녀들과 나 사이에 사람 두명도 나란히 걷기 힘든 골목길이 있고 


그녀들은 쉴새 없이 호객 행위를 한다 

  

지금이야 그런 풍경을 상상 하긴 어렵겠지만 

  

그 당시의 사창가 저녁의 풍경은 명동거리를 방불케 한다 

  

그 좁은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메워지고 ,그 사람들을 호객하기 위해 

  

여자들이 어우러지고 말그대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내가 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 하다 


예를 들어, 꿀차 라는것은 30개 1박스에 2천원에 들여온다 


꿀차 는 그저 뚜껑을 따고 뜨거운 물만 부어 휘휘 저어 주면 되는 방식이라 매우 간단 하다 


가격은 1잔에 2천원을 받는다 


꿀차 한잔을 팔면 대략 1900 원씩이 거의 내 마진인 셈이다 

  

내가 관리 (?) 하는 가계는 6개 였다 


관리라고 해서 거창한것은 아니고 나는 그 가계에 콘돔,휴지,물수건 등을 매일 공급해 준다 


그리고 그 가계들은 나의 장사를 도와준다 


도와주는 방식은 이렇다 


그런곳에 오는 남자들은 대부분 2~3명씩 함께 온다 ,들어 갈때는 함께 들어가지만 


그중 먼저 일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먼저 나온 사람은 나머지 친구들을 기다리며 함께 했던 파트너와 대화를 한다 


대화 내용은 맨날 뻔하다 


아가씨가 그 남자의 정력에 대해 오바하면서 치켜 세워주면 

  

그 손님은 의기 양양해서 허풍을 떠벌려 대는 그저그런... 


그럼 그 아가씨는 목이 마르다며 저기 저 꿀차 한잔 사달라고 아양을 떤다 


기고 만장해진 남자는 쉽게 응한다 


그때 아가씨가 응석을 부리며 "아~이 나만 먹으라고?? 우리 언니들도 한잔씩 사줘~" 


하며 아직 대기(?)중인 언니들을 가리킨다 


대략 4~5명 ,남자는 흔쾌히 ok~한다 


이렇게 팔리는 꿀차수가 엄청 나다 


장사를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하는데 이것 저것 다빼고 매일 아침 나에 순수익이 대략 

  

30~50 만원 정도 됐었으니까.. 


물론 그녀들은 그렇게 받은 꿀차를 먹지는 않는다.. 

  


처음 일을 시작 했을때에는 일하는 내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기가 

  

서로 내색 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민망했다 


그녀들이나 나나 서로 젊은 사람들 이고 

  

서로 무슨 직업인지 뻔히 아는데 안 민망 할수가 없다 

  

그것도 잠시 

  

매일 저녁 8시 오픈 할때 그녀들 가계에서 함께 밥을 차려 먹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서로 쉽게 친해졌다 


하지만 각 가계들마다 이모 라고 불리는 포주들이 무섭게 관리 하고 있어서 

  

뭐 사적인 대화를 한다거나 그러지는 못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날수록 그녀들은 나를 삼촌 이라고 부르며 

  

서로 보이지 않는 위안이 되어갔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가지 이야기가 있다 


아침 7시 정도 되면 장사를 마무리 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나는 내 마차를 정리 하고 나서 그 골목의 일정 구간을 빗자루 로 청소를 한다 


여섯 가계 수십명의 여자들이 거의 반 나체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앉아 있고 


바로 코앞에서 빗자루 질을 한다는게 여간 어려운일이 아닐수 없다..(매우 민망하다,,) 

  

그렇게 빗자루질 하고 있을때면 그녀들은 내게 짖굿은 농담을 건네며 

  

자기들끼리 깔깔대고 웃곤 했다 


그리고 나에게 응원가(?)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때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드라마가 최진실,안재욱,차인표가 출연한 

  

"별은 내가슴에"였다 


그 주제가 또한 선풍적이였다 


"사랑했던~너를 잊지 못해~부디~너를 다시 볼수 있다면~" 이 노래 


그 노래에 약간 개사를 해서 


"사랑했던~xx삼촌~~ 잊지 못해~부디~xx삼촌 다시 볼수 있다면~" 이런식으로 


그 주변 가계 수십명의 아가씨들이 짖굿게 큰소리로 청소하는 나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매우 민망하고 얼굴 빨게 지는 일이다 ㅎㅎ 

  

그리고 또 여자들만 모여 있는곳이다 보니 못을 박거나 형광등을 갈아끼우는 등의 

  

일도 내몫이였다 

  

하루는 골목길을 비추어지는 형광등이 나가버렸다 


작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형광등을 갈아끼우는데 


또 아가씨들이 짖굿게 놀려대기 시작했다 


"xx삼촌~배꼽보여요~"깔깔깔~~~ 


멋적게 웃으며 형광등을 갈고 사다리에서 뛰어내리는순간 못에 걸렸는지 

  

바지 옆 이 부욱 찟겨 나갔고 


팔꿈치와 허벅지에서 피가 났다 


지켜보던 이모들과 아가씨들이 놀라 뛰쳐나왔지만 


아픔 보다는 민망함과 챙피함에...ㅠㅠ 

  

그녀들은 진정 나를 걱정해 주었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여러명이 뛰쳐나와 나를 가계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빨리 바지 벗으라고 성화였다 


너무 챙피해 하는 나를 보고 짖굿게 장난 치며 괞찮다고 벗으라고 했다 


상처난곳에 약을 발라주고 자기들 츄리닝 바지를 건네어줬다 


그리고 찢어진 바지를 꼬메어 주겠다고 서로 장난 스레~"내가 꼬맬꺼야~" 

  

"웃기지마 내가 꼬매드릴꺼야~"하며 깔깔대기도 했다 

  

그랬다 항상 인형 처럼 꾸미고 앉아 무료하게 문밖을 내다 보고 있어야 하는 

  

그녀들에게는 그런 소소한 일들이 


재미였고 현실을 잠시라고 잊게 해주는 헤프닝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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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느날은 내가 몸살이 너무 심하게 걸려서 


이모에게 전화를 했다 너무 아파서 오늘은 쉬겠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전화를 끊자마자 전화가 빗발치듯 걸려왔다 


그녀들 이였다 


많이 아프냐고 병원 가보라고 그리고 자기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민간 처방 까지.. 


이렇게 하고 있어라 저렇게 하고 있어라 


그녀들은 정말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해 보면 내 마차 서랍에는 몸살 감기약 몇봉지와 아프지 말라는 메모가 

  

들어 있기도 했다 

  

그녀들은 단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하루종일 가게안에서 군것질도 못하고 있어서인지 

  

간혹 나에게 초콜릿이 먹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출근 할때 초콜릿,사탕,초코가묻어있는 과자 등을 

  

사들고 출근을 했다 

  

가게마다 밥을 해주시는 아줌마들이 따로있는데 그분들을 통해서 

  

몰래(?) 반입 시켜주곤했다 

  

물론 이모들에게 걸리면 살찐다고 혼나기 일쑤였지만.. 

  

장사가 한창일때 나와 마주보고 앉아있던 그녀들은 

  

드레스 뒤에, 치마밑에 그 초콜릿등을 

  

숨겨놓고는 몰래 하나씩 입안으로 넣고는 나랑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곤 했다 

  

그럴때 내 역할은 내 옆에 앉아 있는 이모들의 시선을 돌려주기 위해 

  

쓸데없는 수다를 떨어주는 것이였다 

  

매일 저녁 그녀들과 밥을 먹을때에는 

  

항상 반찬이 푸짐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기본 밑반찬에 국한그릇...(그렇다고 못먹을정도의 형편없는 반찬들은 아니였다) 

  

게중에 맛있는 반찬이라도 있으면 그녀들은 무조건 내앞에 두고 

  

나를 챙겨먹이기에 열중했다 

  

함께 먹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자신들은 물에 말아먹더라도 계란후라이는 항상 내 밥위에 얹어주곤 했다 

  

  

  

그렇게 대략 몇 개월 정도를 그곳 미아리 에서 생활을 했고 


그녀들과 나 사이에 미묘한 친밀감은 이제 가족 그 이상 이였다 


여기서 잠시 그곳의 생리를 얘기 하자면 


그녀들은 오후 5시에 이모 라는 사람의 인솔하에 목욕탕과 미용실을 간다 


그리고 저녁 8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아침8시에 가계 문을 닫고 이모들은 퇴근을 하는데 


퇴근 할때면 밖에서 문을 자물쇠로 꼭꼭 걸어 잠구고 퇴근을 한다 


그래 그녀들은 그렇게 갇혀서 일하고 있는것 이다 


감금이라고 보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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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게 된일이지만 그녀들 대부분은 빚에 묶여서 도망갈 생각도 못했고 


"또 대부분은 남들같은 제대로된 학창시절 등이 없이 어린나이에 

  

이와같은 생활만을 오래 하다보니 언어구사 라던가 생각 자체가" 

  

일반 사람들에 비해 조금 어눌할때가 많다 

모두 개개인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어쩔수 없이 할수 있는 일은 

  

몸을 팔고 웃음을 파는 일뿐이였다 


하지만 장담 하건데 그 수십명의 여자들 중에 내가 느끼기에 참 못됐다 라고 느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모두 가슴 따뜻하고 정에 굶주려 있고 따뜻한 정이 있는 여자들이였다 


그 이후로 이곳 저곳에서 많은 여자들을 대해왔지만 


대부분 약싹빠르고 계산적이고 자기 잘난맛에 살아가는 일반 여자들을 봤을때 


매우 심리적으로 혐오감을 느낀적이 많다 


그래서 내 주위에 누군가가 사창가 또는 몸을 파는 여자들을 아주 비하 하는듯한 

  

얘기를 하면 괜히 화가나서 열변을 토했던 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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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그곳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그런식의 시선으로 보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그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모르듯이 


나또한 그런 그녀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마음이 향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런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분들을 비하하는 생각 일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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